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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사회/문제점/패권 의식과 대외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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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 인식의 비대칭[*제도개선필요] === >본국의 독자들은 우리 병사가 몇 명 죽었는지는 매일 물었다. 그 도시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 >루이나 통신 종군기자 '''이브 L. 카롱''', 1984년 회고록에서 루이나는 자국민 희생자를 기리는 데는 누구보다 정성을 들이는 나라다. 1966년 [[아르덴역 폭발]] 희생자를 위해 매년 3월 17일 오전 8시 12분이면 벨포르 지하철 전 노선이 1분간 멈추고, 벨포르 해외전몰자 기념벽에는 국외에서 숨진 루이나군 장병의 이름이 빠짐없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루이나의 군사 행동으로 숨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름은커녕 숫자조차 공식적으로 정리된 적이 드물다. 1975년 청북전쟁 중의 [[띠에우리엔 대학살]]에 대한 루이나 정부의 공식 입장은 1976년 조사 결과에서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 처형된 사람은 8,000명이며 모두 청평 당국의 소행이라는 내용으로, 북산 경찰 기동대와 루이나군 분견대가 함께한 부역자 색출 작전은 보고서에 아예 나오지 않는다. 1978년 콘스탄티노폴의 [[다조 빌딩 학살]]은 빌딩 안에 무장세력이 있다는 첩보가 조작되었다는 진상까지 드러났지만, 처벌받은 사람도 정부의 사과도 없었다. 2023년 [[신의 지팡이(ORW-91)|신의 지팡이]]로 고랜드 남부의 지하시설을 타격했을 때도 정부는 민간인 피해를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뒤늦게 인정했다. 국민의 기억도 이 비대칭을 따라간다. 2019년 벨포르 사회조사연구소 조사에서 [[루이나-고랜드 전쟁]](2001~2021)의 루이나군 전사자 수를 대략이라도 맞힌 응답자는 43%였지만, 같은 기간 고랜드 민간인 사망자의 규모를 짐작이라도 한 응답자는 6%에 그쳤다. 다조 빌딩 학살을 들어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14%였고, 띠에우리엔 대학살을 안다는 응답자 가운데 다수는 이를 청평군 단독의 학살로 알고 있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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